어떤 플라스틱이 결정을 잘 형성할까요?
지난 3편에서 결정성 수지와 비결정성 수지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4편에서는 더 깊이 들어가서 어떤 조건에서 결정이 잘 형성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모든 플라스틱이 결정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자 구조가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규칙적인 배열이 가능하고, 그래야 결정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조건을 결정형성을 위한 구조적 요건이라고 합니다.
구조적 요건은 크게 화학적 규칙성과 입체규칙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화학적 규칙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화학적 규칙성의 기본 개념
호모폴리머와 랜덤코폴리머의 차이
화학적 규칙성이란 고분자 사슬에서 반복 단위가 얼마나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느냐를 말합니다.
호모폴리머는 한 가지 종류의 단량체로만 이루어진 고분자입니다. 예를 들어 폴리에틸렌, 즉 PE는 에틸렌이라는 단량체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호모폴리머는 화학적 반복 단위의 규칙성이 존재합니다. 같은 단위가 계속 반복되므로 매우 규칙적인 구조를 가집니다. 이 때문에 호모폴리머는 결정화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랜덤코폴리머는 두 가지 이상의 단량체가 무작위로 섞여 있는 고분자입니다. A라는 단량체와 B라는 단량체가 A-B-A-A-B-B-A-B-A처럼 불규칙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랜덤코폴리머는 화학적 반복 단위의 규칙성이 없습니다. 어떤 단량체가 다음에 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랜덤코폴리머는 결정화되기 어렵습니다.
부가중합 시 반복 단위의 배치
화학적 규칙성에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부가중합 시 반복 단위가 어떻게 배치되느냐입니다. 이것은 특히 PP와 같은 비대칭 단량체로 이루어진 고분자에서 중요합니다.
폴리프로필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프로필렌 분자에는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이 있습니다. 머리 부분은 메틸기가 달린 쪽이고, 꼬리 부분은 그렇지 않은 쪽입니다. 이 분자들이 연결될 때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구조가 달라집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head-to-tail 구조입니다. 한 분자의 머리가 다음 분자의 꼬리에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Ziegler-Natta 촉매를 사용하면 이러한 규칙적인 구조를 얻을 수 있습니다. PP의 화학 구조를 보면 탄소 원자들이 일렬로 연결되어 있고, 메틸기가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불규칙한 부가형태 중 첫 번째는 head-to-head 또는 tail-to-tail 구조입니다. 두 분자의 머리끼리 또는 꼬리끼리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메틸기가 연속으로 두 개 붙어 있는 부분이 생깁니다.
불규칙한 부가형태 중 두 번째는 Random 형태입니다. head-to-tail, head-to-head, tail-to-tail이 무작위로 섞여 있는 구조입니다. 메틸기의 위치가 불규칙합니다.
이러한 불규칙한 구조들은 수지내 결정화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곁가지가 결정화에 미치는 영향
LDPE와 HDPE의 차이
화학적 규칙성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곁가지의 존재입니다. 곁가지란 영어로 Side Chain Branch라고 하며, 주사슬에서 옆으로 뻗어 나온 짧은 사슬을 말합니다. 폴리에틸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고압법으로 폴리에틸렌을 합성하면 곁가지가 많이 생깁니다. 100개의 CH2 반복단위당 약 3개의 곁가지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곁가지가 많으면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기 어렵습니다. 마치 나뭇가지가 많은 나무들을 가지런히 쌓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결정화도가 40에서 5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폴리에틸렌을 LDPE라고 합니다. LDPE는 Low Density Polyethylene의 약자로, 저밀도 폴리에틸렌이라는 뜻입니다. 결정화도가 낮아서 밀도가 낮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저압법으로 폴리에틸렌을 합성하면 곁가지가 매우 적습니다. 약 1000개의 CH2 반복단위당 약 3개의 곁가지만 존재합니다. 고압법에 비해 곁가지가 1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곁가지가 적으면 분자들이 거의 직선에 가까운 형태가 됩니다. 이런 선형의 폴리에틸렌은 서로 규칙적으로 배열되기 쉽습니다. 그 결과 결정화도가 90에서 95퍼센트에 달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폴리에틸렌을 HDPE라고 합니다. HDPE는 High Density Polyethylene의 약자로, 고밀도 폴리에틸렌이라는 뜻입니다.
입체규칙성의 개념
폴리스티렌으로 이해하는 입체규칙성
입체규칙성은 영어로 Tacticity라고 합니다. 이것은 고분자 사슬에서 치환기가 공간상에서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폴리스티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폴리스티렌은 주사슬에 페닐기가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페닐기란 벤젠 고리 구조를 말합니다. 이 페닐기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폴리스티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Isotactic-PS입니다. 페닐기가 주사슬 한쪽 면의 좌우 한 방향으로만 존재합니다. 마치 한 줄로 선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손을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규칙적인 구조 덕분에 Isotactic-PS는 결정화가 가능합니다.
두 번째는 Syndiotactic-PS입니다. 페닐기가 주사슬 한쪽 면의 좌우에 교대로 배열됩니다. 한 줄로 선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왼손, 오른손, 왼손, 오른손을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도 규칙적인 패턴이므로 결정화가 가능합니다.
세 번째는 Atactic-PS입니다. 페닐기가 주사슬 한쪽 면의 왼쪽, 오른쪽에 불규칙적으로 배열됩니다. 어떤 패턴도 없이 무작위입니다. 이러한 불규칙한 구조 때문에 Atactic-PS는 결정화가 불가능합니다. 비결정화 상태로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폴리스티렌은 Atactic-PS입니다. 그래서 일반 PS는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비결정성 플라스틱입니다. 하지만 특수한 촉매를 사용하면 Syndiotactic-PS를 합성할 수 있고, 이것은 결정성 플라스틱으로서 내열성이 높아집니다.
분자량과 결정화도의 관계
결정의 불규칙성이 결정화도를 낮춘다

결정화도란 고분자 물질의 전체 중량 중 결정성 부분의 중량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예를 들어 결정화도가 60%라면, 그 플라스틱의 60%는 결정 상태이고 나머지 40%는 비결정 상태라는 뜻입니다.
분자량은 결정화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분자량이 너무 크면 사슬이 너무 길어서 규칙적으로 배열되기 어렵습니다. 마치 아주 긴 실을 정리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결정의 불규칙성은 결정화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앞서 설명한 화학적 불규칙성, 곁가지, 불규칙한 입체규칙성 등이 모두 결정의 불규칙성을 증가시킵니다.
결정화도가 높으면 밀도가 높아지고, 강도와 경도가 증가하며, 내화학성이 좋아집니다. 반면에 투명도는 떨어지고, 유연성도 감소합니다. 결정화도가 낮으면 그 반대의 특성을 보입니다.
이번 편에서 배운 핵심 내용
이번 4편에서는 결정형성을 위한 구조적 요건 중 화학적 규칙성과 입체규칙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호모폴리머는 화학적 규칙성이 높아서 결정화되기 쉽고, 랜덤코폴리머는 화학적 규칙성이 낮아서 결정화되기 어렵습니다.
부가중합 시 head-to-tail 구조가 일반적이며, head-to-head나 Random 구조는 결정화도를 낮춥니다.
곁가지가 많으면 결정화도가 낮아집니다. LDPE는 곁가지가 많아 결정화도가 40-50%이고, HDPE는 곁가지가 적어 결정화도가 90-95%입니다.
입체규칙성에 따라 Isotactic, Syndiotactic, Atactic으로 구분됩니다. Isotactic과 Syndiotactic은 결정화가 가능하지만, Atactic은 결정화가 불가능합니다.
분자량이 크거나 결정의 불규칙성이 증가하면 결정화도가 낮아집니다.
이것으로 플라스틱 수지의 특성에 관한 시리즈를 마칩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열적 성질과 결정구조에 대한 이해는 플라스틱 사출성형 실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수지를 선택하고 가공 조건을 설정할 때 이러한 기초 지식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